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읽는 사람들에게 지루한 장면이다. 마태복음 1장은 어느집에 들어가면 있는 가족사진과 같다. 그 가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진은 온통모르는 얼굴이 들어있는 지루한 사진이지만 가족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사진 한명 한명이 반갑고 좋아서 한참을 보게 된다. 족보 또한 그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이야기 이지만 그 집안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반갑고 재미있는 책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구약을 알고 기독교인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반갑고 흥미있는 이름들이 나온다. 마치 가족사진과 같이 흥미롭다. 그 52명의 가족사진중에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 4명의 여자들이 왜 족보에 나오는지 이유가 꽤나 흥미롭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답을 하려고 했다.
1. 역사 실증주의 및 자유주의적 해석과 문제점
첫째는 오늘의 현대인들의 논리와 경험 그리고 실제로 존재했을 것만을 논의로 인정하고 소위 사실에 근거한 해석을 하려 한다.
이 관점은 성경을 신의 계시가 아닌 **'역사적 기록물'**이나 **'정치적 편집의 산물'**로 취급한다.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은 마태가 유대인의 폐쇄적인 선민의식을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결함 있는 여인들이나 이방인을 족보에 '삽입'했다고 본다. 유대인의 혈통적 자부심이 근거 없음을 폭로하려는 공격적 의도로 해석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성경의 신적 권위의 상실하게 된다. 성경 저자를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편집자로 전락시켜, 그 이후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주권을 배제한다.
또한 공동체적 맥락 오해도 일으킨다. 마태복음의 수신자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보게 함으로써, 복음서가 가진 본질적인 '기쁜 소식'과 '위로'의 성격을 간과하게 만든다.
2. 성서 문자주의적 해석과 문제점
둘째는 문자주의의 해석인데 이들은 텍스트에 기록된 '글자 그대로의 사실'과 '개별적인 도덕성'에 집중한다.
이 관점은 족보에 나타난 명단은 단순히 생물학적 계보이며, 부도덕한 여인들이 포함된 것은 "죄인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개인적인 구원론적 교훈으로만 해석한다.
그러나 구속사적 거대 담론을 성경에서 빼버린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계획하신 '이방인을 향한 환대'와 '언약의 확장'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읽어내지 못하고 개인의 경건 수준으로만 축소시킨다.
문맥적 경직성이 드러날때 오히려 성서의 권위를 해치고 의문만 더 가중시키는 문제를 만든다. 족보의 인위적인 숫자 배열(14대씩 세 번)이나 생략된 명단 등 저자의 신학적 의도를 설명하지 못하고 오직 '기록의 일치성'에 대해서 다투거나 입증하려고 온 에너지를 쓰게 된다.
3. 성서 영감설에 기초한 통합적 해석 (결론)
세째는 성서 영감설로 보는 관점이다. 성령께서 인간 저자의 상황과 인격을 사용하시되, 오류 없이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믿음입니다. 이 관점에서 마태복음 족보는 '교회 안의 인종 갈등과 차별의 문제에 대한 따뜻한 해답'이 된다.
먼저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향한 위로를 준다.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도 되는가?", "이방인이 우리 형제인가?"라는 문제로 율법과 현실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었다. 성령은 마태를 통해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족보 안에 이미 하나님의 '환대'가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율법을 완성하는 은혜를 보여 준다. 다말, 라합, 룻 등은 율법적 잣대로는 배제되어야 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메시아의 계보를 잇게 하셨다. 이는 율법이 결코 은혜를 앞설 수 없음을 보여주며, 이방인을 형제와 자매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유대인들에게 정당성과 용기를 부여한다. 하나님이 이미 유대 역사와 족보 속에서 환대하셨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환대와 격려로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게 된다. 결국 이 족보는 밖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안을 향한 포용의 메시지이다. "너희의 뿌리 자체가 이미 이방인을 품은 사랑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갈등하는 성도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마태복음의 족보는 비판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처음부터 얼마나 넓고 따뜻했는지를 증명하는 '가족사진'**과 같다. 성령은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차별 없는 복음의 환대를 전하고 계신다. 모든 차별이 있는 곳에서 이 족보가 읽혀지고 선포될 때 우리도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족보에 들어갔고 하나님의 가족사진에 또다른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기본적인 전통이다. 박충성 1월 14일 2026년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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